반려견과 산책하고 있는 노인. 
반려견이 노인의 치매 위험을 4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셔터스톡
반려견과 산책하고 있는 노인. 반려견이 노인의 치매 위험을 4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셔터스톡
반려견이 노인의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이 들어 개를 키우면 산책을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도 늘어나 뇌 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는 이미 뛰어난 후각으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반려견이 인간의 충실한 동반자일 뿐 아니라 주치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영국의 의료 탐지견 프레야는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에 걸린 아프리카 어린이를 가려냈다. 사진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
영국의 의료 탐지견 프레야는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에 걸린 아프리카 어린이를 가려냈다. 사진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

개 산책시키며 운동, 사회적 고립도 방지

일본 도쿄도 건강장수의료센터의 후지와라 요시노리(Fujiwara Yoshinori) 소장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예방 의학 리포트’에 “일본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를 키우면 치매 위험이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약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개를 키우는 것과 치매 발병 사이의 명확한 연관성을 밝혀낸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치매 환자가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 1억25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가 그중 3분의 2를 차지한다. 최근 뇌에 쌓인 변이 단백질을 제거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하는 약물들이 개발됐지만, 가격도 비싸고 사용 조건도 까다롭다.

건강장수의료센터는 4년 동안 65세 이상 도쿄 거주자 1만1194명을 추적 관찰했다. 노인들의 평균 나이는 74.2세였으며, 여성이 51.5%를 차지했다. 연구진은 처음에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운동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4년 후 치매 발병 여부를 포함한 건강 상태를 평가했다.

연구진은 치매 발병 위험을 나타내는 ‘승산비(odds ratio)’를 조사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 치매에 걸리는 승산비를 1로 볼 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0.6으로 나왔다. 반려견을 키우면 치매 위험이 40% 감소한다는 말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승산비가 0.98이어서 치매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없었다.

논문 제1 저자인 다니구치 유(Taniguchi Yu) 박사는 “노인이 개를 산책시키면서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도 맺는다”며 “운동을 하고 사회적 고립을 피하는 것은 치매 발병 위험이 훨씬 낮은 사람들의 두 가지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개를 키워도 산책을 시키지 않고 고립되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컸다고 밝혔다.

고양이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개와 다른 행동 때문이다. 다니구치 박사는 “고양이를 키워도 산책을 시키지 못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일본보다 반려견을 더 많이 키우는 서구인에게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의 건강 효과 연구 잇따라

반려동물이 노인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다니구치 박사 연구진은 지난해 ‘플로스 원’에 반려견이 노인의 노쇠와 인지 기능 저하, 장애 발병을 늦추며 사망률도 줄인다고 밝혔다.

당시 3년 반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조사 집단의 17.1%가 장애를 겪었고 5.2%가 사망했다. 연구진은 개를 기른 적이 없는 사람의 발병 확률을 1로 볼 때 개를 기르는 노인의 발병 확률은 0.54였다고 밝혔다. 반려견 덕분에 발병 위험이 절반 정도 줄어드는 것이다.

미국 앨라배마대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심리학자들은 지난해 ‘노화와 신경과학의 프런티어’에 20~74세 95명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사육과 치매의 연관 관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 56명은 반려동물을 키웠다. 분석 결과, 반려동물을 키우면 인지 능력과 뇌 건강 상태가 더 좋았다. 연구진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스트레스가 줄고 사회적 활동이 늘어난 덕분”이라며 “반려동물로 뇌 나이를 최대 15년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노인복지 단체인 ‘에이지 영국(Age UK)’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며 “반려동물은 노인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좋게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요양원이나 학교, 장애인 시설, 교도소에 반려동물을 데려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자극을 제공하는 민간 단체가 많다.

캐나다 퀘벡대 연구진은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기에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다른 사람보다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1220명과 그러지 않은 사람 1204명을 비교했다. 반려동물 중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

후각으로 암 환자, 코로나19 감염자도 찾아

개는 노인의 건강을 증진할 뿐 아니라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도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클레어 게스트(Claire Guest) 박사는 2008년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래브라도 품종의 반려견인 데이지가 자기 가슴에 코를 대고 앞발로 두드리는 것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원으로 갔다. 게스트 박사는 데이지 덕분에 유방암을 일찍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과학자들은 의료 탐지견으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했다. 2015년 이탈리아 연구진은 독일셰퍼드 두 마리가 전립선암 환자의 생체 시료를 98%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더럼대와 의료 탐지견 재단 연구진은 2018년 탐지견이 아프리카 감비아 어린이들이 신은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 감염자는 70% 정확도로, 비감염자는 90%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의료 탐지견은 코로나19 환자도 가려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대의 신시아 오토(Cynthia Otto) 교수 연구진은 2021년 4월 ‘플로스 원’에 탐지견이 소변과 타액 시료의 냄새를 맡고 코로나19 감염자를 96%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리스틀 카운티 보안관은 미국 경찰 최초로 코로나19 탐지견을 도입했다.

최근 의료 탐지견은 마음의 병까지 찾아냈다. 병원에서는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가 의료 탐지견과 같이 생활하도록 한다. 탐지견은 환자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자해 행동을 하면 주위에 알린다. 의료 탐지견은 후각으로도 이상 징후를 알아챌 수 있다. 지난해 9월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연구진은 ‘플로스 원’에 “개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땀과 날숨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